박람회에서 받아온 견적서를 앞에 놓고도 뭘 봐야 할지 모르겠다는 얘기를 많이 듣습니다. 총액만 눈에 들어오고 나머지는 숫자의 나열로 보입니다.
견적서는 읽는 순서가 있습니다. 총액은 맨 마지막에 봐야 합니다.
첫 번째로 볼 것 — 보증인원
견적서 어딘가에 보증인원이 적혀 있습니다. 이 숫자가 견적서 전체를 지배합니다.
보증인원은 실제 참석 인원과 무관하게 지불해야 하는 최소 인원입니다. 200명으로 계약했는데 170명이 왔다면 200명분 식대를 냅니다. 반대로 230명이 왔다면 230명분을 냅니다. 하방은 막혀 있고 상방은 열려 있는 구조입니다.
서울 도심 홀은 이 숫자가 높게 설정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임대료 구조상 최소 매출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울에서 견적을 비교할 때는 총액이 아니라 보증인원 대비 총액을 봐야 실제 부담이 보입니다.
협상 여지도 여기에 있습니다. 비수기, 평일, 저녁 타임에서는 보증인원 하향 조정이 가능한 경우가 있습니다. 다만 하향 폭에 한도가 걸려 있는 경우가 많으니 그 한도를 숫자로 확인해야 합니다.
두 번째 — 식대 단가와 포함 범위
식대는 1인당 단가로 표기됩니다. 여기서 확인할 것은 단가 자체보다 포함 범위입니다.
주류가 포함인지, 음료가 별도인지, 아동 단가가 따로 있는지, 하객 외 스태프 식사가 어떻게 계산되는지를 봐야 합니다. 아동 단가가 없는 홀에서 아이 하객이 많으면 예상보다 부담이 커집니다.
또 하나 놓치기 쉬운 게 예식 도우미와 촬영 스태프의 식사입니다. 사진 작가, 영상 팀, 헬퍼, 사회자, 축가 팀까지 합치면 열 명 가까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인원이 보증인원에 포함되는지 별도인지가 견적서에 적혀 있어야 합니다.
세 번째 — 대관료의 존재 여부와 조건
대관료가 0원으로 표기된 견적서를 자주 봅니다. 이건 대관료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보증인원을 채우면 면제된다는 뜻인 경우가 많습니다.
조건부 면제인지 완전 무료인지 반드시 확인하세요. 보증인원 미달 시 대관료가 부활하는 구조라면, 하객 수 예측이 빗나갔을 때 이중으로 부담이 늘어납니다. 식대는 미달분을 채워서 내고, 여기에 대관료까지 붙습니다.
면제 조건이 “별도 협의”로 적혀 있으면 그건 조건이 아니라 여지입니다. 금액이 명시된 문구를 요구하세요.
네 번째 — 꽃과 장식의 기본 세팅 수준
견적서에 “기본 장식 포함”이라고만 적혀 있으면 그건 정보가 아닙니다. 기본이 어느 수준인지는 홀마다 천차만별입니다.
반드시 기본 세팅 상태의 실제 사진을 요청하세요. 홍보용 사진은 대부분 업그레이드 세팅입니다. 이 차이를 모르고 계약했다가 답사 때 놀라는 경우가 흔하고, 결국 추가금을 내고 올리게 됩니다.
가능하면 다른 팀 예식이 진행 중일 때 답사를 잡으세요. 실제 세팅된 상태를 눈으로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다섯 번째 — 스드메 항목의 숫자들
스드메가 묶여 있는 견적이라면 다음 숫자들이 명시돼 있어야 합니다.
앨범 페이지 수, 원본 파일 제공 여부와 컷 수, 드레스 피팅 횟수, 본식 드레스 선택 등급, 헬퍼 비용 포함 여부, 원판 촬영 포함 여부, 그리고 촬영 인원 구성입니다.
마지막 항목이 특히 중요합니다. 작가 한 명이 예식장과 신부 대기실을 동시에 커버할 수는 없습니다. 몇 명이 오는지가 결과물의 밀도를 결정합니다.
헬퍼 비용은 견적서에서 빠져 있다가 당일 현금으로 요구되는 경우가 있어 미리 확인해야 합니다.
여섯 번째 — 견적 유효기간과 계약금 조건
박람회 현장가는 대부분 기한이 있습니다. 이 기한이 며칠인지 문서에 적혀 있는지 보세요. 구두로만 “이번 주까지”라고 하는 건 근거가 없습니다.
계약금 액수와 환불 조건도 같은 자리에서 확인합니다. 계약금이 전액 환불 불가인지, 일정 기간 내 취소 시 일부 반환인지에 따라 위험도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일곱 번째 — 견적서에 없는 비용
견적서에 적히지 않는데 실제로 나가는 돈이 있습니다. 하객 주차 지원비, 사회자와 축가 답례, 예식 당일 이동 차량, 답례품, 부모님 의상이 대표적입니다.
이 항목들을 별도 목록으로 만들어 견적서 옆에 두세요. 총 지출을 볼 때 견적서만 보면 실제와 벌어집니다.
이제 총액을 봅니다
여기까지 확인하고 나면 세 장의 견적서가 비교 가능한 형태가 됩니다. 항목을 같은 조건으로 맞춰서 다시 계산하면 순위가 뒤바뀌는 경우가 자주 생깁니다. 처음에 가장 저렴해 보였던 견적이 항목을 채우고 나면 가장 비싸지는 일도 흔합니다.
네 장 이상 받는 건 권하지 않습니다. 비교 대상이 늘어날수록 판단이 흐려집니다. 세 곳에서 시세가 보이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실제로 순위가 뒤바뀐 예
세 곳에서 받은 견적의 총액이 각각 2,400만 원, 2,650만 원, 2,900만 원이었다고 해봅시다. 순서대로 A, B, C입니다.
항목을 맞춰보니 A는 보증인원이 220명으로 가장 높고 원판 촬영이 빠져 있었습니다. B는 보증인원 190명에 원판이 포함이었고, C는 보증인원 180명에 꽃 장식 등급이 한 단계 위였습니다.
실제 예상 하객이 190명이라면 A는 30명분 식대를 더 내야 합니다. 여기에 원판 추가금까지 붙습니다. 이걸 반영하면 A가 가장 비싸집니다.
총액만 보면 절대 안 보이는 역전입니다. 그래서 항목을 맞추는 작업을 건너뛰면 안 됩니다.
여덟 번째 — 결제 방식과 잔금 일정
계약금, 중도금, 잔금의 비율과 납부 시점이 적혀 있는지 봅니다.
잔금을 예식 당일에 현장에서 정산하는 구조인지, 며칠 전까지 완납해야 하는지에 따라 자금 계획이 달라집니다. 축의금으로 잔금을 충당할 계획이라면 당일 정산이 가능한지가 중요한 조건이 됩니다.
카드 결제 가능 여부와 한도도 확인하세요. 현금가와 카드가를 다르게 제시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차이가 견적서 총액에 반영돼 있는지 봐야 합니다. 현금가로 표기된 견적을 카드로 결제하면 실제 지출이 올라갑니다.
서울은 업체 수가 많은 만큼 견적 편차도 큽니다. 이 작업의 효용이 다른 어느 지역보다 큽니다. 서울웨딩박람회에서 받아온 견적서를 그날 저녁에 이 순서대로 한 번만 훑어보세요. 한 시간이면 끝나고, 결과는 수백만 원 단위로 갈립니다.